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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천교 순교자의 해원 공사
  • 신미(辛未 : 道紀 61, 1931)년 정월 18일에 보천교 신도 10여 명이 태모님께 와 굶주림을 호소하거늘
  • 태모님께서 이용기에게 이르시기를 “보천교 신도가 저렇듯 굶주리니 어찌하면 좋을지 생각하여 보라.” 하시고 또 보천교 순교자의 해원(解寃)에 대해 말씀하시니라.
  • 이에 용기가 오룡동에 사는 김도봉과 해전리에 사는 정덕근과 광암리에 사는 송병우를 만나 태모님의 말씀을 전하며 자금 형편을 걱정하니
  • 세 사람이 협조할 것을 약속하고 백미 두 석과 현금 70원을 자금으로 삼아 대흥리에 싸전을 벌여서 굶주린 신도들의 일상용품을 대주고 끼니를 잇게 하며
  • 또 일부는 보천교 순교자의 해원 공사에 사용하니 3월에 이르러 세 사람의 싸전 자금이 전부 소모되니라.
  • 얼마 후 태모님께서 세 사람을 불러 칭찬하시기를 “너희들이 참 장한 일 했다.” 하시니라.

  • (증산도 道典 11:294)




  • 1절 294:1 굶주림을 호소. 차경석 성도는 생활이 곤란한 보천교 신도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직조(織造) 공장을 운영했다. 대흥리에서만 1,500여 가구가 살았는데 교세가 번창했을 때는 저녁이면 집집마다 태을주 소리가 들렸으나 보천교가 없어진 뒤로 태을주 소리 대신 ‘독닥독닥’ 하고 베 짜는 소리만 들렸다 한다. 지금은 직조 공장 자리에 대흥 초등학교가 들어서 있다.
  • 4절 294:4 싸전을 벌여. 당시 싸전을 운영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차경석 성도의 조카 차순옥도 싸전을 크게 운영하다가 외상값을 받지 못하고 완전히 망하고 말았다.(차순옥의 딸 차봉수 증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