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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곡 차경석의 회한과 죽음
  • 병자(丙子 : 道紀 66, 1936)년 윤3월 10일에 차경석이 가족들과 60방주를 비롯한 많은 신도들을 불러 모으고 말하기를
  • 내가 신도들에게 몹쓸 짓을 했다. 600만 교도들, 저 불쌍한 사람들, 내 사람들…. 내가 없어져야 한다.” 하더니
  • 잇몸을 찔러 피를 내고 마약을 입에 넣은 뒤에 얼마 후 숨을 거두니 시각은 오후 두 시경이라.
  • 이 때 곁에서 임종을 지켜 본 사람은 경석의 아내 이씨와 그 아우 윤경과 윤덕, 아들 용남, 봉남, 계남, 봉용, 사위 노영한과 이석래, 당질 순옥, 당질부 손승례, 재종손녀 봉수 등이더라.
  • 장례는 9일장을 치르는데 600만 신도들이 모두 상복을 입으니 마치 국장과 같거늘
  • 18일 탈상 때는 대흥리에서 삼산리 고직동(三山里 庫直洞)까지 장지(葬地)로 가는 길이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니라.

  • (증산도 道典 11:320)




  • *** 320장 차경석 성도의 당질인 차순옥의 딸 차봉수 증언.
  • 3절 320:3 숨을 거두니. 차성석 성도가 작고하기 3일 전부터 비룡산을 비롯한 대흥리 일대의 산들이 ‘우-웅’하고 울었다. 당시 왕심리에 사는 안명오를 비롯한 여러 명이 이 소리를 듣고 “대흥리 차경석 씨가 죽을란가 보네.” 라고 하였는데 3일 뒤에 부고가 왔다고 한다.(차경석 성도의 3남 차봉남 증언)
  • 6절 320:6 고직동. 정읍시 입암면 국사봉(國師峯) 아래에 있는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