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도는 종교가 아니다. 이것은 증산도를 보는 모든 명제의 대전제이다. 증산도를 선천 종교의 한 범주로 인식하는 잘못된 시각에서부터 증산도를 보는 모든 왜곡이 시작된다. 증산 상제님의 대도 세계를 참되게 이해하지 못하는 근본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증산도는 선천 종교문화의 모든 한계를 극복한 초종교다. 종교문화의 범주를 넘어서서 인류문화를 총체적으로 개벽한 인간의 생활문화의 대도이다.


동방의 한국 땅에 우주의 통치자 하나님께서 다녀가셨다. 122년 전에 이 땅에 오신 증산 상제님! 상제님께서 열어 놓으신 개벽세계는 선천의 모든 종교*문화와 본질적으로 그 성격을 달리한다. 증산도는 우주의 주재자께서 강세하시어 인류 구원의 새 세계를 열어 주신 개벽진리이다. 천지만물의 생명을 성숙의 세계로 인도하는 추수진리이다. 증산도는 인류의 새 세계 건설의 대도이며 보편적인 삶의 큰 길(大道)일 뿐이다. 증산도를 종교의 안목에서 보는 한 증산도의 도법세계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 증산 상제님이 우주의 통치자로서 집행하신 천지공사의 원시반본과 보은, 해원과 상생의 구원정신은 신천지 세계를 개벽해 주신, 인류의 보편적인 삶의 새 질서이다.

이제 종교는 이 세계를 구원할 수 없다. 종교는 인류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문명 창조의 어머니 역할을 해 왔으나, 오늘의 인류가 안고 있는 모든 상황은 종교가 해결할 수 있는 한계를 이미 오래 전에 넘어서 버렸다. 그것은 오늘의 세계가 근원적인 해결을 요구하는 숱한 난제들을 너무도 많이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가 고뇌하고 있는 이 문제는 단순히 문명사의 차원이 아니다. 모든 생명의 모태 되는 하늘과 땅이 깊이 병들어 있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이미 증산 상제님께서 오시기 전에 천상계에서부터 “하늘의 모든 신성(神聖)과 부처와 보살들이 비겁의 말세 운세에 빠진 천지의 큰 겁액을 구천에 있는 나에게 하소연해 오므로 내가 이 땅에 내려오게 되었다.”(2편 27:3)는 한계상황이 모든 것을 말해 준다. 우주 질서의 가을개벽기 시간대를 맞이한 바로 이 사실에 이 시대 문제 해결의 본질적인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제 지구촌의 만백성에게는 깊이 병들어 있는 하늘 땅의 생명과 그 환경으로부터 ‘새로운 생명 질서’를 열어 주신 증산 상제님의 후천 대개벽 세계의 진리만이 살길이다. 우주 주재자 하나님으로서 증산 상제님께서 열어 주신 증산도는 인류가 겪고 있는 오늘의 난국의 총체적 상황을 근본부터 바로잡는 우주 통치자의 도법(道法)이다.


종교(religion):현대 '종교'라는 말은 불교·기독교·유교 등의 개별 종교들을 총칭하는 유(類)개념으로 사용되고있다. 이 말은 19세기 말 일본 메이지(明治)시대에 서양의 'religion'의 번역어로 쓰이게 되면서 일반화된 것이다. 그러나 원래 종교는 '부처의 근본이 되는 가르침'을 의미하는 불교용어다. 서기 600년경 중국의 천태산지자(天台山智者)의 저서 『법화현의(法華玄義)』에 나오는데, 여기에서 종(宗)은 부처가 직접 설법해 놓은 것이고, 교(敎)는 이것을 알기 쉽게 강해한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서양의 'religion'을 번역할 때 동양에는 이에 해당하는 용어가 없었다. 그래서 일본 학자들이 '릴리전'을 불가에서 쓴 '종교'라는 엉뚱한 말로 처음 번역하였던 것이다. 본래 '릴리전(religion)'의 어원은 라틴어의 'religio'로 '재결합'이라는 뜻이다. 즉 죄를 지은 인간이 쫓겨났다가 다시 돌아와 신과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이런 의미의 릴리전이 본래 앞에서와 같은 뜻을 가진 불교의 종교로 번역된 것이다.


증산도는 더 이상 한국의 민족종교가 아니다.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는 인류 보편의 대도이며 인간 생활문화의 그 모든 것에 대해 무궁한 창조성과 새 생명을 열어 주는 무극대도이다. 우주 통치자가 인류문화 통일세계를 열어 주신 대도이다. 이것이 증산도에 대한 올바른 정의다.


뒤돌아보건대, 증산 상제님의 진리는 그동안 유·불·선·기독교 등 선천문화권의 안목으로 해석되어 너무도 왜곡되어 왔다. 기껏해야 인류의 새 시대를 열고자 하는 새로운 보편사상이나, 민족종교 또는 한국의 신흥종교 정도로 증산도가 이해되어 온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시대적 정황과 구조적인 문제들이 한데 얽혀 있었다. 우선 무엇보다도 증산 상제님의 행적을 기록한 기존의 모든 경전들을 수백, 수천 번 읽는다 할지라도 상제님의 대도세계를 깊이 체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첫째,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언어가 왜곡되어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기록된 상제님의 언어는 어지심과 자비 쪽으로만 편중되어 그려져 있고, 상제님이 종종 쓰신 육두문자식의 말씀이 기록자들에 의해 생략되고 조작되었다. 그리하여 생동하는 상제님의 숨결과 그 말씀의 참 경계를 느끼기 어려웠던 것이다. 상제님은 평소에 육두문자를 잘 쓰셨다. 이것은 인간의 타락한 심령과 묵은 기운을 후려쳐서 잠자는 영혼에 새 생명의 불꽃을 터뜨리는, 준엄히 경계하시는 방편으로 자연스레 쓰신 상제님의 일상 언어의 한 부분이었다. 그리하여 “육두문자가 내 비결이라.”(4편 75:4)고도 하셨다.

둘째는, 상제님 말씀과 후천 개벽공사의 핵심 내용이 많이 누락되어 증산 상제님의 도권(道權)과 신권(神權)의 조화 경계를 생동감 있게 체험하기 어려웠다. 상제님은 이 땅에 인간으로 오시어 병든 하늘과 땅의 질서를 바로잡아 인류의 나아갈 길을 열어 주신 천지공사를 집행하셨다. 31세 되시던 신축(辛丑 : 道紀 31, 1901)년부터 평범한 인간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자유자재하신 대권능의 화권(化權)을 강유(剛柔)를 겸비하여 쓰셨다. 증산 상제님은 천지 개혁의 대개벽공사로 우주촌의 통일 낙원을 지상에 건설하신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기록으로는 우주의 통치자로서 도(道)의 궁극적 경계의 조화세계에서 보여 주신 무궁한 조화권능의 경계를 헤아리기 어려웠다.

또한 증산 상제님에 관한 기존의 대부분 기록은 단순한 사실(fact) 기록자의 입장에서 상제님의 생애와 9년 천지공사의 개벽공사 내용과 행적을 기술함으로써 더더욱 상제님의 숨결을 깊이 느끼기 어렵게 되어 있다. 모든 역사의 기록은 기록자가 어떠한 역사 인식의 경계에서 쓰느냐에 따라 그 기록내용의 생명력과 정확성이 판도를 달리한다. 증산 상제님의 말씀과 행적의 기록은 상제님 대도의 경계를 올바르게 체험하여 진리의 핵심을 깨 주는 기록자의 깊은 도적(道的) 체험과 말씀을 보는 안목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증산 상제님은 선천 세상의 성자들이 전한, 하늘 보좌에 계신 과거의 하나님이 아니다. 더 이상 미래의 새 진리를 여는 예언된 새 부처님도 아니다. 이미 122년 전에 이 땅에 역사 속의 한 인간으로 내려오시어 인간의 온갖 피나는 고난을 체험하시고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여 새 천지의 개벽 세계를 열어 주신 새 하나님이다. 후천 5만년 선경낙원을 건설하시고 하늘 보좌로 돌아가신 인존시대의 하나님이시다. 증산 상제님은 하추교역의 가을개벽기, 인류문화 추수기를 맞아 인간으로 강세하여 지구촌 대통일의 새 문명세계를 열어 주셨다.

상제님은 대우주의 통치자 하나님으로서 창조주 하나님을 부정하셨다. 이 우주에는 개벽장 하나님이 계실 뿐이다. 하나님은 시간대의 변화에 따라 새 질서를 열어 주시는 우주 질서의 통치자이시기 때문이다. 이 통치자 하나님을 ‘상제(上帝)님’이라 부른다.

상제님의 말씀이 왜곡되어 진리의 큰 기틀을 보기 어려웠던 가장 큰 또 하나의 이유는, 지난날 유교문화의 병폐에 의해 선천시대 남성 중심의 사고를 벗어나지 못한 데에 있다. 증산 상제님은 천지의 가을 추수시대인 후천 5만년 곤도수(坤度數)의 음개벽 시대를 열어 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제님께서는 정말로 성도들 가운데 여자 성도를 한 사람도 두시지 않았을까’ 하는 것은 늘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큰 의문 가운데 하나였다. 공사에 수종든 주요 여성들이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았다. 상제님의 도법에는 상제님이 친히 내세워 종통을 전수하시고, 후천문화권의 창업의 씨를 뿌리는 수부 도수가 있다. 또한 진리의 핵심 맥을 전하게 하기 위해 상제님이 내세우신 여성에게 붙인 도수가 있었음에도 단순히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관심 밖에 소외돼 있었다.

그런데 증산 상제님은 광구천하의 마무리 과정에 진법도수를 붙여 놓으셨다. 그것은 김형렬 성도 이상으로 말씀 증언의 중요한 사명을 받고 때를 기다리게 한 인물을 최후의 증언자로서 만나게 하신 것이다. 증산 상제님께서 후천 곤도수의 천지 제물로 바쳐 9년 천지공사 동안 처음부터 어천하시던 날까지 참여케 하신 유일한 여성인 김호연 성도의 말씀 증언이 『道典』에 처음으로 기록된 것이다. 사람의 신명(神明) 기운을 볼 줄 아는 그녀는 증산 상제님이 붙여 놓으신 맥 전수의 사명에 따라 천지공사 공판의 마지막 증언대에 서서 상제님 조화권능의 경계와 대공사의 행적을 생동하는 상제님의 언어로 꾸밈없이 생생히 전해 주었다.

이 『道典』이 나오기까지는 철저한 현장 답사와 자료 수집, 이제까지 문자화된 모든 성구말씀의 분석에 약 20년의 세월이 걸렸다. 증산 상제님의 친족과 후손, 김형렬 성도 가족을 비롯하여 그 외 모든 성도들을 추적하고 공사를 보신 대부분 지역을 현장 답사하여 잘못 기록된 성도들의 존함과 지명, 상제님의 말씀이 아닌, 왜곡 조작부언되어 있는 성구 내용을 최대한 바로잡았다. 이것은 나 자신의 3대에 걸친 일관된 신앙력의 열매이며, 증산도 백년 도사(道史)의 결실로서 가장 큰 영광스런 대업이라 하겠다.

『道典』 출간의 역사적 의의는 선천 인류문화의 진액을 거두신 증산 상제님의 대도 진법시대를 열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고, 후천 선경 세계로 가는 ‘인류의 교과서가 출간되었다’는 데 더욱 보람된 뜻이 있다. 『道典』은 후천 5만 년 세계 인류의 교과서이다. 『道典』은 편협한 선천 문화의 낡고 묵은 기운을 모두 거두고 인류의 보편문화 시대를 여는 새 생명의 교과서다.


『道典』은 증산 상제님의 대도 세계에 한 생애에 걸친 희생과 봉사로 수종들고 세상을 떠나신 태운장 김형렬, 김호연 성도 두 내외분과 모든 상제님의 성도분들, 그리고 일천만 명의 구도의 숨결과 희생의 도과(道果)로서 세상에 나온 것이다. 이 『道典』을 바른 마음으로 깨어져 읽은 사람은 반드시 일어나 상제님께 경배하리라.


그동안 증산도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 60여만 권의 많은 책을 무료로 전해 주었다. 여기서 얻은 최종 결론은 책을 거저 주면 고귀한 줄을 모르고, 문제의식이 없어 기운이 철저히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책은 반드시 제 돈 주고 사서 정성껏 읽어야 정신이 깨지고 ‘책값을 한다’는 교훈을 새삼 깨달았다. 이것은 생명을 얻는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하나로 본다. 물론 『道典』은 앞으로 세계 주요 언어로 번역되어 지구촌 방방곡곡에 수백만 수천만 권이 널리 퍼져 동방의 한국 땅에 인간으로 다녀가신 우주의 통치자 하나님이신 증산 상제님의 대도를 지구촌 형제들에게 전할 것이다.

이제까지 현장 답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성도들과 제삼자들로부터 듣기만 하고 기록한 지난날의 모든 왜곡된 내용과 문제점들을 『道典』에서 최대한 바로잡고자 하였다. 또한 상제님의 본연의 대도세계를 깊이 체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으나 아직도 미비한 점이 있다. 미처 싣지 못한 말씀과 문제 내용은 판을 거듭하며 가다듬고 바로잡기로 한다. 본래 각주 작업까지 방대한 계획을 세워 1만 권 이상의 자료를 수집하였다. 그러나 시간에 쫓겨 작업 도중 다음 기회로 미루게 되었고, 우선 본문의 상제님 말씀이나마 세상에 내는 것이 절박하여 아쉬움을 무릅쓰고 성편하게 되었다.

마무리 작업 과정에서 그 지난함을 수차 절감했고, 한없는 좌절의 벼랑에 서 있을 때 증산 상제님의 성령을 세 번 친견하게 되었다. 특히 작년(辛未 : 道紀 121, 1991) 초가을에 소련을 거쳐 핀란드에 갔을 때 상제님의 성령을 뵙고 은혜를 받은 것은 일체의 환상을 깨뜨리는 일생 일대의 가장 강렬한 체험이 되었고, 지친 몸에 작업을 포기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이르렀을 때 태모님이 성령으로 오시어 온몸을 어루만져 주시며 큰 용기를 주셨다.


지금은 세계 인류의 생사를 판단하는 가을 개벽의 시간대에 들어서고 있다. 이러한 절체절명의 시간대에 동방땅에 다녀가신 상제님의 대도를 잘 닦아 개벽기에 처해 넘어가는 억조 창생을 널리 건져 지구촌 통일의 선경낙원을 건설할 수 있는 참 일꾼이 되기를 축원한다.

임신(壬申 : 道紀 122, 1992)년 음력 9월 19일

증산 상제님 성탄절 122주년을 맞이하여

甑山道 宗正 安 耕 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