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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천교에서 성골을 인도 받아 모심
  • 3월에 이르러 성골이 정읍 경찰서에 보관되어 있다는 소식을 들은 성모 권씨께서 대로하시어
  • 경찰서에 가서 “내 아들 유골을 내놓으라.” 하며 고함을 치시니 일본 순사들이 성모님의 범상치 않은 행동에 두려워 모두 자리를 피하니라.
  • 계해(癸亥 : 道紀 53, 1923)년 삼월삼짇날 경찰에서는 성모님의 강력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성골을 보천교(普天敎)로 인도하니
  • 보천교에서는 정읍군 입암면 신면리(新綿里) 진등 마을에 빈소(殯所)를 마련하여 안치하고 묘각(墓閣)을 세워 모시니라.
  • 이에 철제가 다시 100여 명을 동원하여 진등 마을 빈소에 모셔 둔 성골을 도굴해 가거늘
  • 보천교에서 200여 명이 도굴범들을 추격하여 태인과 정읍 중간 지점에서 다시 되찾아 오니라.
  • 정묘(丁卯 : 道紀 57, 1927)년 가을에 철제가 상제님의 친딸 이순(二順)을 앞세워 보천교를 상대로 성골 인도 청구 소송을 제기하니
  • 경석이 패소(敗訴)와 성골 도굴을 우려하여 차윤경(車輪京), 김정곤(金正坤) 등으로 하여금 대흥리 비룡산 중턱에 성골을 평장(平葬)하게 하고 빈소에는 김정곤의 머슴 뼈를 대신 묻어 두니라.

  • (증산도 道典 1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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