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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골을 찾기 위한 공신의 노력
  • 조철제의 허무맹랑한 만행을 탐지한 문공신은 김정우(金定雨)로 하여금 철제를 거짓 추종하여 신임을 받게 하면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니라.
  • 하루는 철제를 따르던 경상도 사람 둘이 공신에게 와서 공부를 청하매 공신이 흔쾌히 받아들여 공부를 시키거늘
  • 그중 한 명이 느닷없이 피를 쏟더니 혼수상태에 이른지라 공신이 정신을 차리게 하고 그 연유를 물으니 거짓으로 남의 집에서 돈을 가져와 신벌을 받은 것이더라.
  • 공신이 그들을 다시 돌려보내니 그들이 그 동안 베풀어 준 공신의 은혜에 감복하여 아쉬움을 남기고 다시 조철제에게 돌아가니라.
  • 임술(壬戌 : 道紀 52, 1922)년 정월 23일에 그 두 사람이 다시 공신을 찾아와 “조철제가 상제님의 성골을 도굴하여 영모재에 숨겨 두었는데 내일 새벽에 북간도로 모셔 간다.” 하거늘
  • 일찍이 공신이 고부경찰서에 갇혀 있을 때 ‘공신아, 내 몸이 조선을 떠나면 안 되느니라.’ 하신 상제님 말씀이 불현듯 되살아나는지라
  • 법적 절차를 밟아 성체를 모셔오려고 하니, 공신의 제자 양주선, 민영두, 박노규, 이기선 등이 서둘러 영모재를 습격하자고 강력히 주장하매
  • 20여 명을 거느리고 석 자가 넘는 각목을 챙겨 통사동으로 찾아가니라.
  • 영모재에 도착하여 문지기 넷을 때려눕히고 방으로 들어가니 조철제는 이미 도망하고 피우던 담뱃불이 채 꺼지지 않았거늘
  • 10 공신이 이중벽 속에 숨겨 둔 성골을 찾아 집으로 모시고 와 보니 뜻하지 않게 현금 만여 원이 들어 있더라.
  • 11 공신이 현금은 경찰서에 가져다 주고 찾아온 성골을 천장 위에 은밀히 모시다가 운산리 신경수의 집으로 옮겨 용마루 속에 모시거늘
  • 12 이 과정에서 성골 가운데 왼팔 뼈가 없음을 확인한 공신이 정우 등으로 하여금 다시 철제를 추격하게 하여 서대전역에서 그 일행을 붙잡으니
  • 13 철제가 왼팔 뼈를 심복 김윤진에게 주어 도망치게 하매 정우 등은 철제가 가진 현금을 빼앗으니라.
  • 14 이에 철제가 대전 경찰서에 정우 일행을 강도로 고소하매 경찰이 철제와 정우 일행을 취조하니 성골 도굴 사실이 모두 드러나는지라
  • 15 공신과 장남 광옥(光玉)을 비롯한 정우와 철제 등 20여 명이 검거되어 공신은 7년 징역에 처해지고 철제는 되찾은 돈으로 뇌물을 주어 곧 풀려나니라.
  • 16 이 때 수산도 독립 자금 후원의 죄로 공신과 함께 대전 형무소에서 7년을 복역하니라.

  • (증산도 道典 10:140)




  • 2절 140:2∼10 문공신 성도의 제자 박인규, 오채문과 아들 문복환 증언.
  • 12절 140:12 서대전에서의 쟁탈전. 조철제는 서대전역을 거쳐 경상도로 가려고 하였는데 서대전 가서 늘 쉬는 시간이 많으니까 쫓아와서 기차 안과 광장에서 싸움이 났었다. 그러다 일경한테 전부 폭력집단으로 붙잡혀 갔다. 그러니까 조철제 쪽에서 사람을 패고 돈을 뺏아갔다고 신고를 하니 문공신은 거기에는 가지 않았는데도 주모자로 끌려갔다.(이우인 증언)
  • 15절 140:15 문광옥(文光玉, 1902∼1983). 본명 기남(奇男). 문공신 성도의 장남. 광옥은 이 사건으로 1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
  • 16절 140:16 7년을 복역. 문왕이 유리(羑里)에 7년간 유배된 것처럼 문왕 도수를 맡은 문공신 성도는 7년 동안 서대전 형무소에서 영어(囹圄)의 몸이 된 것이다.